눈사람 자살 사건 (겨울 살이 AU)
창작 AU ;ㅤ눈사람 자살 사건ㅤ
내 입술보다 건조하고 네 낭만보다 차가운,
내 모든 계절이 너였으며 유서였다
겨울살이의 시노에.
추위에만 살아갈 수 있는 몸을 가진 시노에는 봄과 여름엔 저택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어. 금방이라도 타 죽을 것처럼 열을 앓고 살다 가을쯤 되어서야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지. 눈사람 같이 금방이라도 눈에 지워질 것처럼 시리고 하얀, 따가울 듯 차가운 피부지만 추위는 느끼지 않는... 꽤나 별난 체질 덕에 겨울 날이면 시노에는 눈에 파묻혀 놀거나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어. 그렇게 외로움도 모른 채 홀로 살아가는 시노에와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하게 된 건 신이치였지. 자주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던 시노에는 모든 경험이 신이치가 처음이었어.
겨울만을 품고 살아온만큼 시노에는 마시고 내뱉는 호흡조차 시리고 차가워. 그런 시노에가 유일하게 따듯한 숨을 머금는 때가 있다면, 신이치와의 순간이었지. 신이치는 모든 계절을 살며 봄과 여름을 담아온 자신의 따뜻한 호흡으로, 시노에에게 입술을 포개었어. 그러면 시노에의 시린 숨결이 제 폐부에 번지는 게 느껴졌지. 신이치는 생각했어. 그건 아마 시노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자신의 허파에 서리가 찰수록, 시노에의 가슴엔 열기가 찰 거라고. 하지만 그건, 사람의 온기 한 번 닿은 적 없는 시노에에게 있어 죽음으로의 예고였을 거야.
겨울이 지나면 꽃이 만개할 텐데. 화려한 꽃밭의 풍경과 시노에는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신이치는 말했어. 시노에는 한겨울에 나타나 자신보다도 더 시린 색채를 띄는 백빛의 신이치를 자신의 겨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봄이어서, 신이치는 시노에로 하여금 봄을 일깨우도록 하는 사람이었지. 겨울에 갇혀살기만 했던 시노에가 어찌 봄을 알까? 신이치가 없었다면, 시노에는 봄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조차 모른 채 살았을 테지.
무리하게 봄을 거닌 탓인지 짙은 열병을 앓던 시노에는 여름이 일어나는 때에 결국 눈을 감았어. 신이치 덕에 시노에는 고운 봄날의 풍경을 만끽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시노에를 죽게 만들었지. 신이치를 이유로 시노에는 봄을 살며 죽음을 쌓아갔던 거야. 시노에는 자신이 죽을 걸 알지만서도, 신이치가 너무 좋아서, 신이치가 말하는 봄과 여름의 세상을 겪고 싶어서, 봄과 여름의 풍경을 살아가는 자신을 보여주고자 겨울의 밖으로 발을 내밀었던 걸까. 사랑을 이유이자 원인으로 죽음을 겪었던 걸까. 그럼 신이치는, 이제 시노에가 없는 겨울을 보내겠지. 시노에가 신이치를 만나기 전, 홀로 겨울을 지내온 시간보다 훨씬 오래.
그렇게 마침내, 시노에는 겨울에서 해방되었고, 두 번째 눈사람이 되어 신이치는 다시 여기, 겨울에 있어. 다시는 감각하지 못할 시노에의 시린 호흡을, 폐부에 차오르던 서리 낀 숨결을, 그 온도의 잔상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기 위해, 잃지 않기 위해, 미처 보여주지 못한 여름과 가을의 풍경을 견뎌내면서.
눈사람은 다시 겨울을.
'Text > AU'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떠오른다한들 사라지는 것 (복제인간 AU) (0) | 2021.11.12 |
|---|---|
| 사라진다한들 떠오르는 것 (가상현실 AU) (0) | 2021.11.12 |
| 카운트 다운 Countdown (창작 AU) (0) | 2021.09.11 |
| 우리가 파랑을 삼키는 법 (인어 AU, 미완) (0) | 2021.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