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
앙고가 풀어준 1주년 기념 썰 ^//^ ♡
2021.09.18.
앞으로도 부디 사랑의 힘을 믿어주길.
▶ A Normal Day
ㅤ사랑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사랑의 힘을 믿어요.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넓은 거실에 울린다. 풍부한 성량으로 감정을 실어 발음이 뭉개지지 않도록 연기하는 건 내게 있어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읽고 있는 대본은 다음 주부터 촬영에 들어갈 로맨스 드라마의 최종본이었다. 생각해 보면 로맨스물은 신이치를 사랑하고부터 자주 찍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금도 섭외 가 들어온 작품에 가끔 출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어 가는 사랑의 형태를 자신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싫지 않았으니까. 한낮의 밝은 햇빛이 거실의 커다란 창으로 들어온다. 따스한 햇볕이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눈부신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고, 대사 옆에 쓰인 지문을 읽으며 지문에 맞는 제스처를 취했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얕게 움직였다. 나는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대본을 쥔 왼손을 바라본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약지의 반지를 보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상대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낯에 열을 올리게 하는 연인이. 언제쯤 돌아올까.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했는데. 모처럼의 휴일인데 갑자기 일이 생겨선, 빨리 왔으면 좋겠다…. 투정처럼 이어지는 생각에 되레 놀란다. 분명 대본을 읽던 중이었는데 언제 다른 생각으로 샌 거지. 품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본다. 신이치가 들었더라면 분명 놀려댔을 테니까.
ㅤ대본엔 ‘사랑의 힘’이라는 표현이 잦게 등장했다.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사랑으로 많은 것을 극복해나가는, 다소 진부하고 식상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감각적인 대사나 사소하면 서도 확실하게 시청자들을 설레게 할 사건이나 장면이 많았으니까. 흥행할만한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배우에게 없어선 안 될 능력이었다. 또한 섭외가 들어온 역할을 잘 소화해낼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먼저 대본을 읽은 신이치가 내게 어울린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는 사랑의 힘을 믿어요. 작게 중얼거리고 페이지를 넘긴다. 내가 했던 고백은 고해성사나 자백과 비슷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언제나 필요한 건 구할 필요 없이 손에 쥐고 있었고 없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차고 넘쳐서 굳이 잡지 않아도 됐고. 그러고 보면 신이치는 내가 갈구한 첫 사람이었다.
ㅤ시노에 씨.
ㅤ다음 장에서 연기할 장면은 사랑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 남자 주연과의 키스신이었다. 신이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나는 계속해서 대본을 읽어나갔다. 캐릭터의 감정선에 집중하기도 했고, 말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으나 집중력을 흩트리고 싶지 않았다.
ㅤ시노에 씨?
ㅤ미세하게 끝을 올린 부름에야 반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든다. 능청스레 웃은 신이치가 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왔어?
ㅤ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면 걸음을 내디뎌 소파 옆에 앉는다. 소파가 흔들리고 자리에 앉은 신이치가 손을 뻗어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조금 전에 왔어요, 하고 짧게 답했다. 내게 머물던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그 시선을 따라가면 줄곧 쥐고 있었던 대본에 달했다.
ㅤ또 연습 상대가 필요하신가요.
ㅤ신이치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키스신이 적혀있던 지문을 읽은듯했다. 이제 연습 상대는 필요 없어. 불퉁하게 내뱉은 말에 신이치가 재차 웃음을 터트린다.
ㅤ그렇다면 연인으로서의 키스는?
ㅤ극적인 표정 변화가 작은 연인 탓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낯빛이 바뀌는 건 늘 내 몫이었다. 삽시간에 열이 오른다. 발개진 낯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신이치가 답을 종용하듯 고개를 슬쩍 기울여 나를 들여다본다.
ㅤ…필요하다고 하면, 해줄 거야?
ㅤ대본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물으면 신이치가 솔직한 요구에 의외라는 양 눈을 깜빡인다.
ㅤ당연하죠.
ㅤ한때, 이 감정을 허상이라 여겼던 적이 있었다. 단지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결코 깊게 빠져선 안 된다고. 신이치가 한 손으로 내 턱을 가볍게 그러쥐고 얼굴을 가까이 댄다. 엇갈리지 않고 마주쳐오는 시선이 다정해서, 사랑이 아니라 부정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술이 닿고 나서야 양팔을 뻗어 목을 끌어안고 눈을 내리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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